"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50, 60 세대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음직한 새마을 노래다. 당시 시골 마을의 경우, TV는 고사하고 라디오를 가진 집도 흔치가 않아, 정부에서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집집마다 나무통으로 된 사각형 유선(有線) 스피커를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뉴스나 공지사항 전달은 물론이고 군가(軍歌)를 연상케 하는 우렁찬 새마을 노래가 피곤한 국민들의 아침잠을 깨우던 그런 스피커였다.
당시 정부에서 무료로 설치해 주었던 그 스피커에는 청취자가 방송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채널 스위치 같은 것이 없음은 물론이고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볼륨 스위치조차도 하나 없어, 말 그대로 오로지 방송하는 측에서 보내주는 내용을 무조건 듣기만 해야 하는 일방통행 미디어였던 것이다.
하루 세 끼니 해결조차 다급한 판에,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혹은 누가 정치를 어떻게 하든 서민들이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었지만, 일방적으로 울려 퍼지는 스피커 소리 외에 달리 정보를 취할 수 있는 길도 마땅치 않았기에, 유일한 스피커는 진리였던 것이며 스피커가 알려주는 진리의 말씀에 행여 의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경(不敬)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를 포함하는 한국전쟁 전후(前後) 노년세대들의 보수적 완고함을 빗대어 흔히 콘크리트에 비유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강냉이 가루라도 주고, 입을 것이 없어 추운 사람들에게 줄무늬 재건복(再建服)이라도 주면서,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구령에 맞추어 춤을 추도록 훈련되고 굳어진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그들의 신앙을 바꾸거나 버리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과거가 모두 부정되어 버리는 정체성의 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 터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우민정책(愚民政策)에 의한 지배계층의 기득권 유지가 신(神)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나라의 국민들일수록 자신들이 우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고도화된 우민정책은 피지배자들 스스로가 우민이 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우민화에 있다.
항상 사대(事大)로써 권력의 기반을 꾀하던 반도(半島)의 위정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북(北)이나 남(南)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지배권 유지를 위한 우민화의 효용성에 대한 유혹에서도 여전히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만의 시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채널이 고정된 스피커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 되었음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오로지 진실만을 전달하며 민의(民意)를 대변해야 할 미디어들이, 각종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이권만을 탐하고 거짓을 전달하며 또다시 새로운 우민화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면, 천 개의 채널을 가진 화려한 하드웨어 스펙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시절 합판 나무통 스피커와 무엇이 다를까?
기억된 정보가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이 사람의 몸을 만들 듯이 주입되는 정보와 지식이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불량한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부정식품을 판매하는 행위보다 더 해롭고 사악한 범죄라는 게 내 생각인데, 요즘 나무통 스피커 세대를 혐오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세대들이 스마트폰으로 오염되어 가는 쓰레기 정보에 의해 콘크리트 보다 오히려 더 단단한 새로운 물질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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