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녀와 헤어지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녀가 처한 현재 삶이 애처롭고 안타까워서다. 급기야는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추후엔 쉽사리 만날 수 없으리만치 삶에 짓눌려 사는 그녀여서다.
그녀와 헤어진 후 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한동안 망연히 슬픔에 잠겼었다. 기약 없는 그녀와의 이별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생뚱맞게 눈물에 대한 의미를 곱씹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린 어떤 경우에 상대방이 지닌 진실의 무게를 제대로 인식할까. 진실은 형체도 냄새도 양도 정확히 잴 수 없다. 하지만 흘리는 눈물에서만큼은 진심을 읽을 수 있잖은가.
다름 아닌 눈물은 슬픔, 혹은 절망감, 기쁨에 휩싸일 때 흘리기 때문이다. 눈물 중엔 인위적 눈물도 있다. 흔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는 눈물은 동조의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슬픔이나 감정의 극대화를 위하여 배우나 탤런트는 극본 대사 내용에 감정을 이입시켜 애써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기침을 숨길 수 없듯이 슬픔 및 기쁨, 사랑의 감정 역시 감추기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이런 마음에 기인하여 흘리는 눈물엔 거짓이 없다. 이로 보아 눈물의 맛으로도 간접적으로나마 마음 상태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입안으로 스민 눈물의 맛은 시큼했다. 비록 나의 눈물이지만 그 맛을 새삼 음미해 보기란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려서 대여섯 살 때 일이다. 이모가 먼길을 떠날 때 일이다. 그분이 입고 있던 한복 두루마기 자락으로 나의 작은 몸을 감싸며, "나도 데려가 주세요!"라며 울며불며 이모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평소 살갑게 대해준 이모와 이별이 어린 마음에 송곳처럼 박혔었나 보다. 이때 눈물로 온 얼굴이 범벅이 됐을 때 나의 눈물을 최초로 맛보았다. 당시 눈물 맛이 유난히 짭쪼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맛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눈물은 짠맛이구나"라고 스스로 감정했었다.
눈물 맛을 논하노라니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새뮤얼 리처드슨의 대하소설, `파멜라` 내용이 문득 생각난다. 이 소설에서 슬픈 여주인공인 파멜라가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분석한 게 매우 인상 깊다.
그녀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 맛으로써 시큼하면 사랑의 눈물이며, 짭짤하면 슬픔에서 흘리는 눈물이라는 독백 대목이 있다. 소설 속 여주인공 말대로라면 감정 변화에 따라 눈물의 화학 구조가 달라진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절망과 공포에 휩싸였을 때 흘리는 눈물의 맛은 어떤 맛일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우연히 보게 된 인터넷 기사 때문이다. 얼마 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를 점령했을 때다. 이에 탈레반의 잔혹한 횡포에 대한 두려움을 눈물로 호소하는 10대 소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해당 영상에서 그 소녀는 자신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는 하소연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소녀의 눈물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못내 궁금하다.
눈물이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소량이 분비되어 안구를 적셔준다. 이뿐만 아니라 먼지 따위를 씻어주기도 한다. 눈물은 눈 안의 가느다란 누선淚腺에 의해서 나온다. 이곳에서 하루 1∼1.2 g 정도의 눈물을 자아낸다. 그런데 슬플 때는 어찌 그리 많은 분량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질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한편 인체가 신비롭기조차 하다.
그날 나는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인하여 갑자기 봇물처럼 터지는 눈물을 주체 못했었다. 지인이 삶의 고통에 시달리며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게 참으로 가슴 아파서다. 요즘 세상살이가 너무 각박하다 보니 흘릴 눈물조차 메말랐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나는 걸핏하면 눈물 홍수를 이루는지 모르겠다.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노랫가락에도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다정도 병이런가. 이웃이나 지인이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는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마음의 보석이란 생각이다. 이는 한낱 동정심이 아닌 진정한 이타심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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