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운가 보다. 북쪽이 고향이어서일까? 고고한 자태로 항상 북녘을 향해 고개를 돌리곤 한다. 그럼에도 마치 기품 있는 귀부인 같이 우아한 모습이다. 이런 목련을 대한 것은 지난 해 초봄 무렵이었다. 만개한 매화에 질세라 산수유도 연둣빛 잎을 기어코 터뜨렸었다. 이어서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련도 소리 없이 벙글었다. 당시 순백의 목련에 홀려 우윳빛 꽃잎들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격조 높은 그 자태에 한동안 넋을 잃곤 했었다.  이 때 목련은 초등학교 입학하여 처음 뵌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요즘도 텅 빈 그릇 같은 허허로운 마음이 따스함으로 한껏 차오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까마득한 기억이다. 어머니로부터 격리 된다는 불안감에 학교만 가면 소변을 옷에 지렸다. 당시 여섯 살이었다. 취학 연령이 채 안 돼도 학생을 받아주던 시절 이야기다.   입학식 날 어머니 치마꼬리를 부여잡고 치마폭으로 온몸을 감싼 채 울음보를 터뜨렸다. 이 때 나를 달래주던 선생님이다. 어린 눈에도 첫인상은 참으로 주효 했다. 담임 선생님 모습에서 첫눈에 어머니 모습을 연상 했다. 늘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선생님 모습은 무척 따뜻하고 자애롭게 느껴졌다. 실제로 선생님은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요의尿意를 느꼈으나 화장실을 미처 못가고 수업 시간에 옷에 소변을 누곤 했다. 선생님은 그 때마다 다정한 표정으로 나의 젖은 옷을 벗기고, 교실에 예비로 둔 바지를 입히곤 했다.  당시 피부에 와 닿았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음을 안심 시키느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등을 토닥여주던 선생님. 급기야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배탈이 나서 바지에 대변을 보고야 말았다. 이 때도 선생님은 주저 없이 나를 양호실로 데리고 가 따뜻한 물로 손수 몸을 씻어주기도 했다.   그리곤 선생님은 잠시 포옹해 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양호실 창밖을 무심코 바라봤을 때 교실 밖 화단에 피어난 목련이 눈에 띄었다. 그 이후로 목련이 피어날 적마다 어린 날 추억 속 선생님 모습을 그리곤 한다. 목련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추억하자 갑자기 알베르 카뮈가 떠오른다.  1957년 알베르 카뮈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되자마자 그는 펜을 들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던 루이 제르맹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다. "선생님이 가난한 학생이었던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모든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1910년 알제리 빈민촌에서 성장한 카뮈다. 가난 때문에 그는 중학교에 갈 형편이 안됐다.   제르맹 선생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을 수 없는 카뮈에게 따뜻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카뮈를 날마다 방과 후 두 시간씩 붙들고 공부를 가르쳤다. 그리곤 중학교 장학생 자격시험에 당당히 합격 시켰다. 노벨상 연설문을 제르맹 선생한테 바칠 정도로 카뮈는 자신의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여태 갚지 못하였다.   어린 날 선생님을 그립게 하는 이 목련은 실은 냉랭한 꽃이다. 약 일 억 만년 전엔 북극 지방을 중심으로 북반구 전역에 걸쳐 널리 자생하던 꽃 아닌가. 그곳의 급격한 기상 변화로 따뜻한 남쪽에 분포된 것만 오늘날 살아남았다. 목련이 지닌 그리움의 속성은 인간과 닮았다면 지나칠까. 봄바람에 수줍게 한 겹 한 겹 옷을 벗는 하얀 속살의 목련꽃이다.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그 절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목련을 눈여겨보면 꽃송이들이 전부이다시피 북쪽을 바라본 까닭이다.  어느 글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남향의 꽃 덮개 세포들이 북쪽 꽃 덮개 세포들보다 따스한 햇빛을 많이 받아 더 빨리 자란 탓이란다. 이로보아 자연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해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가보다. 이런 목련을 보고 조상들은 이 꽃을 오로지 임금님을 충심으로 생각하는 충절에 비유했다. 한낱 식물의 생태에도 의미 부여를 하여 신信과 충忠을 삶의 덕목으로 삼은 옛 조상님들의 웅숭깊은 마음이 왠지 못내 그리워지는 이즈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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